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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선기(2006-02-24 00:58:30, Hit : 1780, Vote : 106
 잘된 영화감상문이라 퍼왔습니다.-영화 뭔헨 감상기-

피의 수도꼭지는 한번 틀면 잠글 수 없어"  


1930년대 미국 뉴욕의 흑인, 독일계 유태인,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의 전쟁을 다룬 영화 "후드럼"(로런스 피쉬번, 팀 로스, 앤디 가르시아 공연, 1997)에 나오는 대사다. 6.25 전쟁을 겪어본 분들은 이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전쟁 발발 당시 충남 아산의 토목강구소장(지금의 4급 공무원 정도)이셨던 나의 외할아버지는 북한군을 피해 교회로 절로 도망다니며 교회 목사가 북한군에게 두들겨 맞아 장독으로 죽는 것을 보셨다. 북한군 치하에서 살아남은 동료공무원 몇 명이 반공청년단에게 붙들려 "빨갱이가 살려줬으니 너도 빨갱이"라는 욕을 들으며 타살당했던 것도, 그리고 그 청년단원이 몇 년 후 무슨 이유인지 자살해버렸다는 이야기도 생생하게 기억하신다. 그야말로 죽음이 그치지 않는 세상이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이라크, 체첸, 아체,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피의 수도꼭지로 빨려 들어갈 날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06년 2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Munich"는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를 지구 반대편의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시도를 했다. 최초의 점령, 누가 저질렀는지 모르는 동시적 테러, 그에 대한 보복, 또 다른 보복테러, 역시 보복, 지지 않겠다는 악다구니.....끝없는 유혈, 이젠 내 목숨이 위태롭다는 불안과 초조함, 그럴수록 묘하게 생겨나는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

시오니스트로 알려진 유태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진의를 의심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 250명에게 비디오 카메라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은 영화 개봉을 앞둔 제스처쯤으로 인식됐다. 나 역시, Democrat(민주당 지지자)면서도 이라크전을 지지했던 스필버그의 행적을 보며 그가 만드는 영화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의심했다. 하지만 어제 센트럴6 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나의 느낌은 "스필버그가 웬일이냐"였다. "절대적 선"의 개념에 충실한 미국인의 정서로서는 나오기 힘든 내용이었다. 혹시 스필버그가 그동안 생각을 바꿨나?

영화의 줄거리는 대부분 아실 것이다.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직전, 괴한들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해 현장에서 2명의 트레이너를 사살하고 팔레스타인 정치범 2백명의 석방을 요구하고 뮌헨 공항으로 이동하다가 독일 경찰과 이스라엘 특공대의 공격을 받자 남은 9명의 인질을 모두 살해했고 자신들 역시 5명이 사살되었으며 3명이 현장 체포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보복을 시도해 테러사건의 배후인 9명의 아랍인을 암살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풍경은 그렇게 단조롭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아브너 대위와 동료들은 뮌헨 테러범 3명이 독일정부로부터 석방되어 TV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장면을 보며 분노에 떤다. 그러나 이스라엘 청년들의 복수극 역시 팔레스타인 측의 테러만큼 잔인하게 진행된다. 그들의 폭탄테러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의 폭탄테러와 다르지 않으며 30명의 특공대원들이 베이루트의 호텔에 침입해 목숨을 구걸하는 암살대상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뮌헨 공항에서 인질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던 테러리스트의 모습과 똑같다. 모사드 국장 애브라임의 냉정하고 비정한 성격은 뮌헨테러의 배후 중 한명인 살라메의 그 거만한 모습과 흡사하다.

영화 초반 AK47을 빼앗아 괴한들과 총을 겨누다가 참혹하게 살해되는 이스라엘 희생자가 느꼈을 공포와, 역시 특공대원들에게 기관총을 들고 절망적인 저항을 벌이다 부인과 함께 벌집이 된 아랍인 피살자가 느꼈을 공포는 무엇이 다를까. 죽음의 공포는 절대적인 그것이다. 나의 외할아버지가 북한군과 남한군경을 번갈아보며 느낀 죽음의 공포, 1973년 9월 칠레 산티아고 시내에서 피노체트 군부의 손에 무참히 살해된 수천 수만의 희생자들이 느꼈을 공포 모두가 한 인간의 공통된 본능이리라. 한적한 거리에서 자신이 번역한 책을 낭독하는 조용한 모임을 갖고 동네 식품점 아주머니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테러 배후자의 온화한 모습, 침대에 눕다가 폭탄이 터져 죽은 피살자가 아브너에게 보여준 친절함, 아테네에서 아랍 테러리스트들과 함께한 밤은 그들 역시 아브너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그가 지키려는 사람들과 똑같은 한 인간임을 암시한다.

아브너가 자신의 침대를 찢고 텔레비전을 분해하며 폭탄이 설치되었는지 몰라 불안해하는 장면은 영화의 절정에 가깝다. 뮌헨테러를 저지른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피살된 사람들의 뒤를 이어 보복을 지시하는 또 다른 사람들 역시 아브너처럼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룰 것이다. 그 어떤 강심장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것은 문학이나 영화, TV에서나 가능하다. 조세형 같은 대도들도 도둑질에 나설 때마다 혹독한 긴장감으로 사지를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고 고백하는데, 사람을 죽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과 싸워야하는 자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심리상태를 보이겠는가.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됐는지 후회하지만 겉으로는 의연하고 단호하게 보여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우리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은 보편인임을, 그리고 우리들 역시 그런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그리고 남은 것은 폭력의 무의미함이다. 이쯤되면 관객들은 이스라엘 역시 팔레스타인과 마찬가지로 "테러" 그 자체를 저지르고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무고한 선수단을 참혹하게 살해한 그 구역질나고 찢어 죽이고픈 원수들에게 복수를 포기하란 말이냐"라는 분노 섞인 질문에 대해 스필버그는 "나는 복수하지 말라고 한적 없다. 다만 그들도 당신처럼 똑같은 일을 당했을 것이고, 똑같은 감정 속에 살 것이다. 그것만은 알아두자"고 응답한다. 현실의 상황을 완벽하게 타개할 구체적인 해결책이 없다면 차라리 자세를 바꿔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하고 스필버그는 자신의 동족들에게 넌지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실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다. 스필버그가 대중에게 생각하기를 권하는 진실은 아직까지 반쪽의 진실이요, 제한적으로 표현된 사실일 뿐이다. 진실을 공정하게 알리고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아랍 테러리스트들을 이스라엘의 암살단원들과 같거나 비슷한 비중으로 그려냈어야 했다. 영화에서 아랍인들은 여전히 "잔인하고 믿지 못할 타인"일 뿐이다. 아테네에서 아브너 일행과 함께한 "알리"의 "우리 아버지는 유태인을 죽인 적이 없다", "집 없는 고통을 당신이 아느냐"는 대사만이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제시한 전부다.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의 <알제의 전투>(1965)처럼 쌍방의 등장인물들을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양쪽의 메시지를 동일한 입장에서 제시할 수는 없었을까.




영화 외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더 심각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1947년 91명의 인명을 살해한 "킹 다윗 호텔" 폭파사건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없는가. 이 사건의 배후인 이스라엘 무장단체 "이르군"의 지도자 메냐헴 베긴은 현 이스라엘 집권당인 리쿠드당의 창설자다. 그는 그 이듬해 3월 팔레스타인 마을을 습격해 2백명의 인명을 살해하여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겁을 집어먹고 고향을 떠나게끔 했다. 1982년 이스라엘의 군대가 레바논을 침공했다. 그들은 국경선에서 25마일까지만 진격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수도 베이루트를 함락시켰으며 사브라와 샤틸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포위한 뒤 군대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4일 동안 2750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무저항 상태에서 살해됐고(국제적십자사 보고서. 국제인권단체들은 희생자 수를 3천명~4천명이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이 1985년 철군하기까지 수 만명의 레바논인이 사망했다. 그 만행의 주인공은 지금 이스라엘 총리인 아리엘 샤론이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1차 인티파다에서 죽은 이스라엘인은 100여명, 팔레스타인인은 1100여명, 2000년 9월의 2차 인티파다 이후 2005년 1월까지 비명횡사한 팔레스타인사람은 3300명, 이스라엘사람은 950명이 죽었다. 6차례의 중동전쟁에서 희생된 양측의 수만명의 인명, 그리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나 아사한 수 십 만명의 운명은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뮌헨"이 폭력의 허무함을 알리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가상히 여기면서도 그 효과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뮌헨학살", 아테네공항테러를 매년 매월 겪어왔다. "우리가 좀 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봐주자"는 목소리도 훌륭하지만, "우리가 저지른 죄악"을 즉자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공정한 태도이며 효과적인 "진실과 화해의 교환"일 것이다.

물론 필자는 반유태주의자는 아니다.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이매뉴얼 월러스틴, 노먼 핀켈슈타인, 박노자처럼 현존하는 훌륭한 유태 지성인들을 볼 때 이스라엘과 유태인을 별개의 존재로 봐야함을 항상 느끼고 되새긴다. 이스라엘의 파괴는 절대 원하지 않으며 유태인이 그동안 겪어온 고통과 그들의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한다.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든지 간에 그 동안의 중동전쟁에서 패한 것은 아랍인들의 무능과 실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동예루살렘에서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2000년 여름의 이스라엘측 제안을 거부한 아라파트의 선택은 현명치 못한 선택이었다. 그런 고자세가 샤탈라 대학살의 주인공 아리엘 샤론의 중앙무대 컴백을 불러왔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민주주의를 이뤄왔고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 복지제도를 완비했다. 사형제도가 없으며 이스라엘의 언론자유도는 167개국 중 96위였다(국경없는기자회 보고서, 2004).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수엘라가 그보다 약간 높은 90위인 점을 보면 이스라엘이 나름대로 동족 유태인들에 한해서는 자유와 복지 등 인류 보편의 가치에 부합하는 선진적인 제도를 보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태인들을 위한 제도다. 그들은 결코 그것을 자신들의 점령 하에 놓인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베풀어줄 생각이 없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사람들은 지금도 고율의 세금을 이스라엘 정부에 납부하지만 직장을 구하거나 사업을 여는 것조차 힘들다. 실업률이 50%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이슬람권이 전근대적이고 무지한 모습도 많이 노출했지만 적어도 느리게나마 발전하려는 자세만큼은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그들보다 강대국이고 선진국이라 하여 그들을 죽이고 멸망시킬 권리는 없는 것이다. "백인의 사명"을 운운한 키플링도 지금 이스라엘의 행태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팔레스타인은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중동 민주주의의 모범이다. 이것을 중동 전체로 전파해야 한다"는 구호는 이스라엘인 자신들조차 뻘쭘해 할 해괴한 소리다.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자유선거가 치러졌을 때 그 결과에 대해 이스라엘과 미국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수백명의 국제감시단이 파견된 공정선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파괴를 노린다? 이슬람 지하드가 자폭테러 방침을 고수한다? 이스라엘의 리쿠드당과 민족종교당 역시 공식 강령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히틀러가 자신들의 조상을 학살할 때 사용한 "최종적 해결"이란 용어를 팔레스타인에게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무시못할 수준이다.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는 이스라엘의 손톱 하나 건드릴까 말까한 수준이지만 이스라엘은 육군과 공군의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세계 10위권 안에 들며 100~2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는 온건파인 파타당처럼 서서히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요르단강 서안의 회복을 목표로 삼는 쪽으로 선회하지만 이스라엘과 부시는 이란과 시리아 침공을 진지하게 거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럴만한 힘이 있다. 이스라엘의 과잉대응은 이미 국가안보와는 상관성이 떨어진 복수 유희의 수준이다.

스필버그의 "뮌헨"은 이런 전후 맥락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이스라엘인들이 테러의 공포에 시달린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완전 멸종의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상황을 관객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이쯤되면 여러분들은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쁘고 복잡하게 해석하지 마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불행히도 그렇지가 않다. 영화가 아무리 허구적이라 해도 관객들은 영화에서 모종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현실에 주입한다. 영화가 갖는 힘은 엄청나다.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 갖는 환상 섞인 동경은 거의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의 힘이다. 어느 나라든지 선전영화를 제작하고 그것에 혹해 군대에 자원입대하는 젊은이는 널려있다. 영화와 TV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렇듯 엄청나다.

그러니 당연히 이에 개입해 해석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뮌헨테러를 다룬 영화다. 여기에 뭐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가 들어가느냐"고 물으실 분도 있을 것이다. 뮌헨테러 역시 이-팔 상호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다른 사건들을 무시하고 뮌헨테러만을 다룬다면 그들의 질곡을 이해할 수 없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을 위한 평화기원의 메시지도 무의미해진다. "뮌헨"은 감독과 스탭, 배우들의 평화에 대한 거룩한 의지와 소망에도 불구하고 이-팔 분쟁 60년의 역사와 수만명의 죽음을 단지 "뮌헨학살" 하나의 단어로 응축시켜버릴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며 스스로 자성하는 아랍인과 유태인이 많이 나올지라도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제3자들은 영화 속의 제한된 사실을 전부로 이해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테러와 보복테러의 허무함, 그리고 그 한복판에 서서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의 깊은 불안감과 적에 대한 연민, 이 질곡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그린 것만으로도 다소의 이스라엘 편향성에 대해 면죄부를 줄 수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증오심과 복수심에 몸을 내맡겨 살아가는 사람 몇 명은 구제할 수 있을 테고 거기서부터 평화와 화해가 출발하는 것 아니겠는가.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선 "너가 나와 같고 나도 너처럼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부터 가다듬는 것이 필요함을 알면 스필버그의 훌륭한 시도에 나름대로 높은 점수를 준다.

2006년 1월 26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는 전체 132석 중 74석을, 온건파 파타당은 45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총선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팔레스타인사람의 73%가 이스라엘 존재를 인정하고, 85%는 평화협상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하마스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이 1967년에 빼앗아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반환한다면 이스라엘과 장기적 휴전에 들어가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의 마호메트 만평 관련 데모에 관해서는 "좀 자제하자"는 목소리까지 낸다. 이들도 현실을 인정하고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꾀해야 함을 인식해가는 희망적인 전망을 믿고 싶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의 48%는 하마스와 대화해야한다고 응답했다. "뮌헨"은 이들 쌍방의 민초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이제는 피의 수도꼭지를 잠궈야 한다"



관리자 (2006-02-24 10:45:21)  
음냐.. 읽기 어려웠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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